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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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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트윈스]] === 딱히 더비, 매치 등으로 이름 붙지는 않았지만 사실 KIA와 LG 두 팀은 LG가 MBC에서 지금의 LG가 된 1990년부터[* 즉, 해태 타이거즈였던 당시부터.] 2025년 현재까지 역사가 상당히 깊은 '''KBO 역사상 최악의 불구대천의 라이벌 관계'''이며 지금까지도 KIA 선수단과 팬들 사이에서 무조건 LG전은 이기고 봐야 한다는 마인드가 강하다. 특히 팬들 사이에선 팀이 10위를 하더라도 LG전은 꼭 잡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 역사를 살피자면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MBC 청룡]]이 해태 타이거즈를 꺾었다면 프로야구 역사도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당시 한국시리즈는 전·후기리그 우승팀이 맞붙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MBC는 후기리그를 1위로 마쳤지만 보너스 지급 문제를 둘러싼 선수단의 내부 분열로 자중지란에 빠졌고 결국 전기리그 챔피언 해태에 1무 4패로 완벽하게 패하며 홈구장인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원정팀 해태에게 우승을 내주게 된다. 한국시리즈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운 해태는 이후 1986~1989 시즌 4연패를 차지하는 강팀이 됐고, MBC는 우승은커녕 한국시리즈에도 한 번 나가지 못하는 만년 중하위권 팀이 되고 말았다.[* 1986년과 1987년 MBC는 [[김건우(1963)|김건우]]와 김용수의 활약으로 막판까지 치열한 포스트시즌 경쟁을 했지만 1987년 시즌 막판 김건우의 교통사고 이후 OB와 사이좋게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1989 시즌까지 MBC가 프로야구에 참가한 8시즌 동안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한 게 최고 성적.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두 팀 사이에는 딱히 라이벌 구도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LG 레전드 [[김용수]]가 스톡킹에서 청룡과 해태가 잠실경기를 하면 해태 팬들이 더 많았다고 밝혔다.] LG의 옆집인 [[OB 베어스]] 역시 1987년을 PO 진출을 끝으로 투수들의 혹사 문제와 선수들의 노쇠화로 급격한 내리막을 겪었기 때문에 역시 해태와 라이벌로 엮이지 못했다. 하지만 1990년, [[LG그룹]]이 MBC 구단을 인수하며 모든 게 달라졌다. LG는 그 해 8월 25일까지 53승 42패(승률 .558)로 3위, 해태는 47승 3무 41패(.533)로 4위였다. 두 팀은 잠실에서 이 날까지 주말 3연전 경기 중 두 경기를 치러 1승 1패를 주고받은 상태였고, 1990년 8월 26일 경기에서 그 유명한 [[잠실구장 패싸움 사건]]이 터진다. 원래라면 구장관리 미흡으로 홈팀 LG의 몰수패를 선언해야 되지만, 원정팀 해태 팬들이 난동을 피웠기에 심판들도 몰수패를 쉽사리 선언하지 못했고 결국 경기는 난동이 진정되고 1시간 뒤에 재개되어 해태의 1-13 대패로 경기가 끝나게 된다. 해태는 결국 페넌트레이스를 2위로 마쳤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 3전 전패를 당한 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다. 거꾸로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 LG는 여세를 몰아 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정상에도 오르게 된 것.[* 해태는 시즌 내내 4위에 머물다 9월 들어 폭풍 상승세를 기록하는데 선두였던 빙그레와의 4연전을 싹쓸이해 휴식일이었던 LG가 선두에 등극했다. 이후 페넌트레이스 우승경쟁 구도는 4강체제로 갔다가 다시 LG와 해태가 선두 자리를 다투는 흐름으로 좁혀졌다. 그리고 LG의 최종전에서 LG가 OB에 승리하고 해태가 태평양과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패배하며 LG의 한국시리즈 직행이 결정됐다.] 서울시민들 중 다수는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많고, 토박이가 적기 때문에 출신 지역이 다양하다. 덕택에 프로야구 원년부터 '서울팀=우리팀'이라는 인식은 미미했고 오히려 '고향팀=우리팀'의 인식을 가졌거나 본인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지방에서 상경한 부모님의 응원팀을 따라서 응원하거나 항상 이기던 해태의 야구 자체에 매료된 비연고성 팬층도 상당했다. 그래서 전라도 출신 팬과 전라도와 관련이 없지만 해태 자체를 좋아하는 팬[* 보통 [[선동열]]의 투구와 [[이종범]]의 화려한 플레이로 해태 팬이 된 경우가 많다.]으로 해태의 잠실 경기는 항상 북새통을 이뤘다. 더구나 포스트시즌 4차전 이후부터는 대개 잠실에서 치르도록 되어 있는 [[중립구장]] 규정 탓에 가장 잠실에서 많은 빅 게임을 가진 구단도 다름 아닌 해태였고 잠실은 해태의 보조 홈구장이라는 말도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타이거즈의 포스트 시즌 역사상 가장 승률이 높은 구장이 잠실이다.] 그리고 후술되겠지만 성적과 상관 없이 워낙 큰 팬층을 가진 영향으로 지금도 KIA의 [[제2 홈구장]]이 잠실이라는 말이 많이 퍼져 있다.[* 당시 LG는 OB와 연고지의 문제가 있긴 했어도 상대전적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기록하고 있어 라이벌이라는 의식이 강하지 않았던 반면, 해태와는 승패마진이 얼마 차이가 안 나는 접전을 많이 벌이며 격 시즌으로 서로 우세를 가져가는 바람에 라이벌리가 확실히 강했다. 이로 인해 양팀의 올드 팬들 사이에서 사실 원조 잠실 라이벌은 LG와 해태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또한, 1990년대 초중반부터 해태 팬들이 LG를 놀리려고 만든 노래인 [[고래사냥(가요)|고래사냥]]이 탄생하게 된다. '자~ 떠나자~ LG 잡으러~' 라고 개사를 해서 잠실구장에서 떼창을 시작했고, LG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응원가가 되었다. 이 응원가는 그 이후 쭉 이어져서 부르다가 결국 2010 시즌을 앞두고 [[김주일]] 응원단장의 사과로 더 이상 공식 응원단에서는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응원단에서는 말리지만 일부 KIA 팬들이 고래사냥을 부르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LG 팬들은 그런 광경을 목격하고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사실 이건 몇몇 단관 카페에서 유도한건데, 이미 2010년대에 들어와선 시대의 변화와 팬 연령층의 변화로 인해 고래사냥 응원을 그만하자는 목소리가 우세했어서 팬들 사이에선 고래사냥 응원이 울려퍼질 때 왜 괜히 상대팀한테 시비거냐면서 별로 안 좋아했다.] 1990년 LG에 입단했다가 트레이드를 통해 1994년 해태로 이적한 [[이병훈(야구)|이병훈]] 前 해설 위원은 "LG 시절엔 솔직히 해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재계 라이벌인 [[삼성 라이온즈|삼성]]이나 잠실 라이벌 [[OB 베어스|OB]]에 포커스를 맞췄다.[* 단 1990년대에는 LG-OB간의 라이벌리가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LG가 OB를 상대전적에서 압살하는 수준이었기 때문.] 그런데 해태에 가보니 'LG에는 지지 말자'라는 분위기가 확실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94년, [[신바람 야구]]로 LG를 정상으로 이끌었던 [[이광환]] 전 감독은 "그 때도 지금처럼 LG는 인기가 대단한 팀이었다. 잠실에서 해태하고 맞붙으면 정말 힘든 경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는 날에 팬 3,000명 정도가 모여 '감독 나오라'고 외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감독으로서도 더 이기고 싶은 경기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https://news.joins.com/article/20687772|#]] 이 라이벌 의식이 절정에 달했던 건 1997 시즌[* 해태의 마지막 전성기였다.]이었다. 이 해 해태는 LG와의 잠실 원정에서 3승 6패로 밀렸는데, 그 6패 중 5패가 8회 이후 역전패였다. 4월 15~16일 2경기 연속으로 연장 끝내기 패를 당하더니[* 4월 17일 경기도 연장까지 갔는데 이 경기는 해태가 이겼다.] 6월 29일 경기[* [[김응용 감독 참외 사건]]과 [[이종범]] 연속 도루성공 종결이 이 한 경기에서 발생했다.]에서는 [[박재용]]이 9회초 당대 최고의 마무리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을 상대로 역전 만루홈런을 때려내고도 9회말 수비에서 재역전패를 당했다. 9월 10일에도 [[임창용]]이 9회말 투아웃까지 잘 잡아내고도 [[허문회]]에게 1루수 강습 안타를 내준 이후 쓸데없는 견제로 2루를 허용한 후 [[이병규(1974)|이병규]]에게 동점타를 내주어 연장 14회 역전패의 다리를 놓아주었다. 절정은 [[1997년 한국시리즈]]였다. 당시에는 플레이오프 진출팀이 서울 연고팀일 경우 순위에 상관 없이 1, 2, 5, 6, 7차전을 잠실에서 열도록 하는 규정 때문에 해태는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하고도 홈 어드밴티지 없이 경기를 치렀지만, 승자는 해태였다. 마운드에서는 [[이대진]], 타석에서는 [[이종범]]이 팀을 이끌며 V9를 이뤄냈다. 이후 2001년, 팀 이름이 KIA로 바뀔 때까지 더 이상 해태가 한국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적은 없다. 결국, 해태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과 마지막 우승 모두 상대 팀이 MBC-LG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해태 팬들 사이에서는 '잠실은 해태 안방 구장'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리기도 했다. 또 KIA로 바뀐 다음에도 라이벌 관계가 지속되어 선수들끼리 벤치 클리어링이 나면 유독 KIA가 LG를 먹이는 언플을 하기도 했으며 특히 고참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을 중심으로 하여 LG쪽으로 돌진하는 일이 잦았다. 이때 벤치 클리어링에 소극적인 구단인 LG 트윈스는 늘 KIA 타이거즈에게 호되게 당하곤 했다. 대표적으로 2008년 박정태[* 현재의 박근홍]-이대형 벤클 당시에 젊은 투수 임준혁이 이대형을 밀어서 부각이 덜 되지만 코칭스태프와 서재응을 비롯한 고참 선수들이 일제히 LG쪽으로 죽일 듯 달려가는 장면이 나타나기도 했다.[* 보통 코칭스태프들이 벤클 중재 역할을 하는데에 비해 여기서는 확실히 전투 태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KIA 코치 한 명을 LG 선수단 여러명이 말리는 건 덤.] 이후 임준혁의 협박성 인터뷰나[* 무려 다음에 만나면 제대로 복수하겠다는 뉘앙스였다.] 서재응 이종범 등의 인터뷰로 LG와 이대형을 싸인 스틸러로 만들어 복수했다는 등[* 이종범이 이대형에게 싸인 훔치지 말라고 혼냈다고 인터뷰했는데 이 당시 이대형은 이종범에게 혼난 적이 없다.] LG팬들의 혈압을 올린 인터뷰는 덤. 허나 재미있게도 이대형은 2014년에 KIA 타이거즈로 오게 되어 단 한 시즌이지만 호성적으로 팬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이종범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LG 트윈스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 물론 LG라고 맨날 당한 것도 아니다. 2002 시즌 페넌트레이스 4위로 포스트시즌 막차를 탔던 LG는 플레이오프에서 [[박용택]]의 활약과 [[김진우(1983)|김진우]]의 부진으로 3승 2패로 KIA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 후에는 2009 시즌 초 [[김상현(1980)|김상현]], [[박기남]] ↔ [[강철민]] 트레이드 덕분에 KIA는 V10을 이룩하게 됐고, '아낌없이 주는 LG'라는 놀림을 받게 된다.[* 해태 시절에는 LG가 해태와의 트레이드에서 승자(94년 LG는 한대화 트레이드로 2번째 정상에 올랐다.)가 됐지만 KIA로 바뀐 뒤에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 부임 이후 KIA의 부진과, 2013 시즌에는 LG [[김기태(1969)|김기태]] 감독의 활약으로 무등구장에서 [[LG 트윈스/2013년/6월/2일|6월 2일 경기]]를 통해 LG 팬에게는 명경기, KIA 팬에게는 치욕의 경기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즌 LG 트윈스는 기나긴 암흑기에서 벗어나게 되고 이 시즌부터 LG의 우세가 계속되기 시작하고 이 기세가 10년 동안 지속되게 된다.[* 기아는 2013-2022 10시즌 중 우승했던 2017 시즌 단 한 시즌을 제외하고 남은 9시즌 모두 LG에게 우세를 내주었다.] 2015 시즌부터는 김기태 감독이 KIA로 부임하며 다시금 양 팀 팬덤의 분위기가 뜨거워졌고, 2016 시즌에는 정규시즌 중에 [[2016년 잠실 야구장 폭력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고 또 가을야구 [[2016 타이어뱅크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와일드카드]]에서 치열하게 맞붙기도 하며 라이벌 관계가 다시금 뜨거워지고 있다. 허나 그 김기태 감독도 우승했던 2017 시즌 빼고는 LG한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기나쌩 클럽]]으로 악명높은 [[류중일]]이 LG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LG는 KIA전 우세 시즌을 다시 만들어냈고 류지현 체제까지 KIA에 계속 우세한 흐름을 이어갔다. 트레이드 면을 살펴보면, 90년대 해태-LG 시절에는 한대화로 LG가 이득을 봤으나 2000년대 들어 김상현 트레이드로 기아가 이득을 보고 있다. 2009년 김상현 트레이드 이후 LG 프런트는 KIA와 전혀 트레이드를 하지 않았으나 2019년 1월 중순 [[정용운]]을 받고 [[문선재]]를 보내주며 10년 만에 트레이드를 단행하기도 했다. [[정용운]]은 2020 시즌 후 방출되고 문선재는 기량 발전 없이 나이만 먹어가며 노망주의 표본이 되어 루즈 앤 루즈 트레이드로 흐르고 있다. [[디시인사이드]] 한정으로는 10개 구단 팀갤 중 보수 성향이 가장 강한 [[LG 트윈스 갤러리]]와 [[KIA 타이거즈 갤러리]]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경기만 졌다하면 쥐갤에서 개념글에 [[전두환]]의 사진을 걸어놓을 정도였던 적도 있었지만, [[박용택]] 은퇴 때 은퇴투어 자격 논란으로 분위기가 안 좋은 가운데 KIA 프런트에서 고별 행사를 마련해 준 것에 감동받았는지 이후 사이가 많이 좋아지기도 했다.[* 전두환 사진이 아니더라도 늘 홍어라고 부르며 지역드립을 일삼던 LG 갤러리에서도 이 날 이후로 거의 1년 동안 기아, KIA라고 부르기도 했다. 양현종 은퇴투어때 LG가 많이 도와주겠다면서 훈훈한 모습을 보이기도.] 그러나 2022 시즌이 개막하자마자 [[김현수(1988)|김현수]]가 이틀 연속으로 [[장종훈]]스러운 빠따질로 [[양현종]]과 [[션 놀린]]에게 연달아 부상을 입히는 플레이[* 물론 김현수의 이같은 플레이는 고의성이 없었지만 과거 [[윤석민]]이 롯데 타자에게 [[홍성흔|두]] [[조성환(1976)|번]] 연속으로 사구를 던진 사건을 생각하면,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불구대천의 라이벌인 KIA와 LG의 관계가 악화되었으면 악화되었지 좋아질 가능성은 극도로 낮다.]가 나오면서 양팀의 관계가 다시 악화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 해 5월 13일 잠실경기에서 [[양현종]]이 [[박해민]]에게 헤드샷을 던져 다이렉트 퇴장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물론 양현종의 평소 인품을 생각하면 고의로 헤드샷을 던졌을 던졌을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LG팬들로서는 김현수 사건 이후 첫 대결부터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간판타자에게 상대팀의 에이스투수가 헤드샷을 던진 셈이 되었기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다.] 그 뒤 2023시즌을 앞두고서는 장정석 KIA 전 단장의 FA 뒷돈 요구 파문으로 박동원이 LG로 이적하게 되고, LG의 29년 한을 푸는 데 결정적인 활약을 하면서 마치 2009년 김상현의 리버스 버전이 되어버렸다. 두 팀 매치업의 인기는 앞에서도 누차 이야기했듯 KBO 최고의 흥행카드 중 하나로, 2020년대 들어서도 변함이 없는데 2023년 4월 말 잠실야구장에서 LG전 주말 3연전을 하면서 금요일 경기를 제외한 두 경기가 매진 사례[* 토요일인 2023년 4월 29일 경기는 2023년 LG 트윈스 홈경기 첫 매진 사례이기도 하다.]를 이루어 라이벌전의 광경이 무엇인지를 증명하기도 했다. 사실 KIA가 2013년부터 10년 동안 LG전 상대 전적이 영 좋지 못하지만[* 상술되어 있듯 시리즈 우세는 2017년을 빼고 전부 LG가 가져갔다.] 이전까지는 해태 시기부터 LG전에 우세한 경험이 많고[*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2022년까지 20시즌 우세 2시즌 동률 19시즌 열세로 LG전에 호각세를 띄고 있다. 1988년과 2009년처럼 KIA가 압도적인 우세를 가져간 시즌이 있어 KIA가 크게 앞설 거라 생각하지만 두 시즌을 빼고는 양 구단의 승패 마진이 그렇게 크지 않다. 또한 2013년부터 LG가 계속 앞서가게 되어 그 두 시즌의 압도적 열세를 상쇄시켜가면서 상대 전적이 더더욱 비등비등한 편이다.] 상술된 호남 출신+비호남 출신으로 구성된 두터운 팬층과 역사깊은 라이벌 구도로 인해 지금 당장의 성적과 상관없이 매 시즌 경기마다 잠실 주말 경기[* 특히 야구 인기가 절정에 올랐을 당시인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평일 경기도 매진이 아닌 경우가 드물었다.]는 항상 매진되거나 혹은 거의 매진에 가까운 수준의 관중이 몰리곤 한다. 그리고 이 첫 시리즈에서 KIA가 스윕승을 기록해 다시 한번 LG와의 대결 구도가 주목 받고 있다. 결국 2023년에는 9승 7패를 거두어 2017년 이후 6년만에 KIA 타이거즈가 상대전적 우세를 가져가게 되었다. 2023년 시즌 종료 기준 통산 상대전적은 383승 14무 356패로 KIA의 우세다. 승패마진은 +27, 시즌 우세는 KIA가 LG보다 딱 2시즌 더 했다. 21시즌 우세, 2시즌 동률, 19시즌 열세. 2024년에는 KIA 타이거즈가 7월 10일 경기 기준으로 8승 3패를 달성하여 조기에 열세 불가를 확정지었고, 바로 하루 뒤인 11일에는 9승을 달성하여 우세가 확정되었다. 12년만의 LG전 2년 연속 우세. 게다가 후반기에는 LG 상대로 전승을 기록하면서 13승 3패로 압도하였다. 그런데 이런 라이벌리와는 별개로 의외로 KIA팬들과 LG팬들끼리 만나서 사이 좋게 잘 노는 경우가 많다. 특히 2020년대에 들어 젊은 층의 유입으로 인해 문화적인 변화가 생긴 탓인지 섞이면 잘 어울린다. 잠실 KIA 두산전에서 LG팬이 KIA팬 친구와 KIA 응원을 하는 경우와 LG 두산전에서 KIA팬이 LG팬 친구와 같이 LG 응원을 하는 경우가 자주 포착되는 편.[* 물론 이것은 KIA와 LG 팬덤 모두 두산 팬덤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접점이 있어서 그런 것도 어느 정도 있기는 하다.] 2025년 시즌 초반에 잠실 LG전 3연전이 예정되어있었는데 한 경기 우천취소를 포함해 2패를 당하며 안 좋은 출발을 하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타격이 안 올라온 타자들 때문에 두 경기 도합 3득점에 그쳐 승리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는데 시즌 초 LG의 페이스가 그야말로 역대급 퍼포먼스이기도 하고,[* 무려 11경기 만에 10승을 달성하였다.] 특히 용병 타자 [[패트릭 위즈덤]]과 엘나쌩으로 유명한 [[최원준(1997)|최원준]]이 LG전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등 아쉬운 모습을 보인 게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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